1.
얼마 전에 드로잉선생님 추천으로 영화 <대니쉬걸>을 봤다. 오래전부터 보려고 마음만 먹었던 영화인데 시간도 나고 해서 침대에 누워 가볍게 시작해 본 영화였다. 그리고 울적함과 답답함에 몇번을 정지시킬 수 밖에 없었다. 차라리 악역이 있는게 마음 편하다. 화가 나는 상황에서 그 속의 모두가 이해되면 너무 속상하고 힘들다. 끝까지 함께 해준 게르다의 감정을 더욱 이해해주고 싶었다. 남편의 정체에 대한 존중과 남편을 잃은 혼란을 함께 겪느라 누구보다 마음이 요동쳤을 것이다. 릴리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는 점이 멋지다.

나의 단점이기는 한데, 영화를 보고나면 잘 기억이 나지 않아서 두세번씩 볼 때가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슬픈 영화를 보는 건 마음이 너무 힘들다. 그렇지만 내가 새롭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해준 좋은 영화다.



2.


엄마 주려고 그림을 그리는 중이다. 같이 산책하다 만난 카페에서 찍어준 사진으로. 그 때 지나가는 말로 그려주겠다고 했었는데 계속 생각만 하다가 어제 그렸다. 그림을 오래 그리면 팔이나 어깨가 아픈데, 이상하게 다리도 아프다. 아무튼 생각보다 잘 그려지고 결과가 만족스러워서 기분이 좋다. 스스로 너무 좋아서 계속 들여다 보고, 또 수정할 부분을 발견하기도 해서 끊임없이 조금씩 더 채워나가고 있다. 완성했나 싶다가도 늘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게 된다. 그림을 그릴 때 마다 그렇다. ‘완성’이라고 이름 붙였다가도, ‘진짜완성’ ‘진짜진짜완성’ 등의 이름을 다시 붙이게 되는 것이다. 늘 완성이 없다. 계속 하다보면 더 나은 결과를 만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끝맺으려는 일들을 ‘미완성’이라고 해버릴 수 있을까.




3.



이 작은 수첩을 한 권 다 채우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매일 ‘꾸준히 메모하자’, ‘글을 자주 쓰자’ 같은 다짐을 하면서도 생각만 하고 말아버리는 내 나쁜 습관 때문이다. 지난 일기를 들여다보는 것은 재밌다. 빨리 집에 가려고 퇴근 후 온 힘을 다해 지하철역까지 뛴 얘기를 읽으면 웃기고, 지난 밤 꿈이 좋았다고만 써놓고 어떤 내용의 꿈인지 써놓지 않아서 내 꿈인데도 기억이 나지 않아 답답하다. 더 꼼꼼히 메모를 하자고 다짐한다. 꿈 얘기 그게 뭐라고. 그 시답지 않은게 새로운 다짐을 하게 만든다.

작년 여름에 일본에서 산 트래블러스노트가 좋다. 손에 딱 들어오는 것이 마음에 들고, 상처가 나도 그게 그대로 멋이 되는 것이 좋다. 두께도 마음에 들고 쥐고 있으면 폼이 그럴싸해서 좋다. 새 노트를 한 권 끼워 넣으니 그 노트만 깨끗한 것이 어째 이상하면서도 어울린다.
새 노트에 새로운 스티커를 붙이면서 또 열심히 끄적여보겠다고 다짐한다. 별 얘기 아닐지라도 궁금해 할 서너달 뒤의 은하를 위해서! 예전엔 일기에 슬픈 이야기, 속상한 이야기를 쓰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읽으면 일기 속의 은하가 너무 안쓰럽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숨기지 않고 쓰려고 노력할거다. 앞으로 꾸준히 글을 써보려고 한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로 유머를 날리는 센스있는 사람이고 싶지만 난 사실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서투른 문장들을 조금씩 쌓으며 연습해보려고 한다. 혀와 손가락을 조금 더 말랑하게 만들고 싶다. 또 쌓여가는 글들이 언젠가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상처가 생기고 끝이 조금 더러워져도 한 손에 들어와서 그런대로 폼이 나는. 새로 만난 것들과도 꽤 괜찮게 어울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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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은하_ :